이제는 누군가의 ‘우상’이 된 그녀 그녀의 ‘우상’과 함께 ‘우상’으로 돌아온 천우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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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배우들에게 가장 어려운 촬영 현장은 어떤 현장일까?

배우들에게 같은 질문을 내리면 대부분 ‘대선배’들과의 호흡을 꼽는다.

어릴 적 브라운관과 스크린으로 바라보며 동경했던 자신의 ‘우상’과 함께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긴장되고 설레는데,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연기를 한다는 건 얼마나 긴장될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물며 9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며 멜로/로맨스 그 자체였던 남자배우와, 2000년대 한국영화 최고의 남자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30대 여배우라면 그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연기를 꿈꾸던 사춘기 시절, 교과서이자 롤모델이었던 대선배와의 연기호흡을 맞추면서도 극의 중심이 되어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의 키를 잡고, 관객들의 모든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며 관객을 압도해야 하는 그런 여배우를 캐스팅해야 한다면, 당신이 감독이라면?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배우는 몇 명이나 있을까? 그리고 그 역할을 숨도 못 쉴 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한 배우는 누가 떠오르는가?

소속사도 없이 척박한 한국 독립/저예산 영화에서 피어나, 독립영화로 각종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기적을 만들며 이제는 독립영화계의 ‘우상’이자 후배들의 가장 훌륭한 ‘롤모델’로 자리 잡은 배우 천우희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는가?

10년이라는 긴 무명생활을 묵묵히 견디고, 마침내 2014년을 ‘천우희의 해’로 만들며 이제는 대체불가한 독보적인 배우로 칸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를 누비는 천우희에 대해 알아보자.

#길었던 무명생활, 강렬했던 첫인상, 그리고 슬럼프

천우희는 2004년 영화 <신부수업>으로 데뷔했다.

아무런 비중도 없고 특별히 눈에 띄지도 않았던 단역 ‘깻잎 무리2’ 역할.

그리고 그 후 다시 단역으로 ‘깻잎 2’ 역할을 하기까지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허브(2007년 작)>에 또 짧게 얼굴을 비췄다.

무명의 천우희가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선보인 영화는 2011년 신드롬을 일으킨 <써니>를 통해서였다.

배우 심은경과 강소라의 상업영화 첫 주연작이고, 유호정 배우의 컴백작품으로 화제가 됐으나 정작 영화를 본 관객들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내리 꽂힌 신스틸러는 무려 11명이나 되는 주연들이 아닌, 본드를 흡입하고 유리병 조각으로 주인공의 얼굴을 그어버린 이른바 ‘본드녀’라 불린 천우희였다.

마치 실제로 본드를 흡입하고 연기 한 듯한 무시무시한 광기와 포스를 뽐내며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자신을 각인시켰으나, 정작 ‘본드녀’로만 불릴 뿐 이름을 알리지는 못했고, 심지어 그 광기어린 연기가 너무 강렬해서였을까? 되려 2년이라는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악역이 너무 뛰어나면 그 이미지가 고정되어 다음 작품에도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는데, 심지어는 그 짧디 짧은 한 장면이 천우희라는 배우를 대표하는 유일무이한 장면이 되었으니 되려 좋은 연기가 본인의 족쇄로 묶여 버린 것이다.

#2014년은 천우희의 해, 독립영화로 청룡의 품에 안기며 13관왕 등극

<써니>의 상미 역으로 묶여있던 천우희는 단 한번에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로 날아올랐다.

지금도 천우희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고, 항상 본인의 대표작으로 불리길 바란다는 독립영화 <한공주>의 ‘한공주 역’을 통해 제 14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 신인연기상으로 첫 번째 트로피를 받은 후 제 3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 제 15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연기상, 제2회 들꽂영화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더니 제5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연기상, 제 3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무려 13개의 트로피를 받아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로 독보적이고, 강렬하게 도약했다.

 유명하지 않은 내가 이렇게 큰 상을 받다니…

포기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다.

앞으로도 의심하지 않고 자신감 갖고 배우 하겠다.

좋은 연기 보여 드리도록 열심히 하겠다.”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소감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이라는 잔인하고 끔찍한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한공주>에서 피해자 ‘한공주’역을 맡으며 자신의 나이보다 10살은 더 어린 여고생 역할을 연기했지만, 이제는 트레이드 마크가 된 동안 얼굴과 위화감 없이 배역에 녹아들며 관객에게 분노와 슬픔의 눈물을 유발한 연기력으로 <써니>에서 보여준 광기어린 모습과 정 반대의 모습을 선보이며, 한국독립영화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피해자 역할이라는 위험하고 조심스럽고 부담되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그 어떤 관객에게도 불편함을 주지 않고 오로지 캐릭터에 집중시키는 연기는 청룡의 품에 안기기 에 충분했고, 사회를 맡은 대선배 김혜수로부터

“한공주 천우희씨 정말 잘했습니다. 실력으로 무장한 배우입니다”

라는 극찬을 받았고, 수상소감으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며 2014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곡성>의 무명, <우상>의 련화를 통해 대체불가 독보적인 배우로

<써니>로 얼굴을 알리고, <한공주>로 이름을 알린 천우희가 <곡성>을 통해 다시 한 단계 올라섰다.

여전히 난해하고 어려우며 여러가지 해석이 분분한 영화 <곡성>은 천우희의 존재감과 무명 역할의 밸런스가 중심을 잡아 준 덕분에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진실과 거짓 그 가운데에서 관객과 주인공에게 끝없이 혼란을 주며, 모두를 현혹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극 초반에는 별로 비중없어 보이던 캐릭터가 극 중반을 지날 즈음 갑자기 모두의 시선을 빼앗고,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인물로 황정민과 대척점에서 곽도원과 관객에게 이른바 멘붕을 선사한다. <한공주>부터 배우로서 부담감이 심한 역할을 해왔지만 자타공인 최고의 배우 황정민, 곽도원과의 연기 호흡에서 그들의 연기내공과 대등한 치열한 연기로 극 중 긴장감을 배가 시키며 다시 한번 ‘미친 존재감’을 발산하며 칸 영화제의 부름을 받아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리고 2019년, 각각 90년대와 2000년대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배우 한석규, 설경구와 호흡을 맞추며 <우상>에서 3개의 축 가운데 한 축을 맡게 된 최련화 역의 천우희는 마치 <곡성>에서 무명을 보는 듯한, 아니 무명을 뛰어넘는 연기를 선보이면서 대선배들과의 호흡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연기내공을 선보였다.

수 많은 복선과 메타포로 중무장하여 <곡성>만큼 어렵고 난해한 <우상>이지만, 3명의 대배우의 치열하고 숨막히는 연기로 무려 144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전혀 길다고 느껴지지 않는 영화에서 천우희는 조선족 불법체류자 역할에서 뛰어난 연변사투리를 통해 다시 한 번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며 마치 <곡성>의 무명처럼 사건의 키를 가지고 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캐릭터에 완벽하게 몰입했다.

아직 개봉 전이지만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받아 레드카펫에 올랐으며, 영화 상영 후 외신기자들도 영화의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에 찬사를 보내며 많은 관심을 보였다.

또한 천우희는 <우상>외에 <소공녀>, <버티고>의 주연을 맡아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애니메이션 <마왕의 딸 아리샤>를 통해 더빙연기에도 도전하는 등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일 준비를 마친 천우희가 2019년을 또 다시 ‘천우희의 해’로 만들 수 있을지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